2014년 4월 14일 월요일

사물놀이


1 개요 

네 명의 사람이 네 가지 물건 즉, 꽹과리장구을 각각 가지고 어우러져 치는 놀이풍물놀이 계열의 음악이다. 듣고 있으면 절로 흥하게 되는 장단과 가락이 특징이다. 약방의 감초처름 들어가는 상모[1] 돌리기또한 특징. 겉보기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지던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역사가 짧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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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풍물놀이 또는 농악은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남사당패나 걸립패 등의 전문적인 예인 집단에 의해서 유지되어 오기도 했고, 농악(農樂)이라는 이름처럼 농사 일정 틈틈이 농민들에 의해 문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풍물놀이나 농악이 모두 사양길로 접어들어 전문 예인인 남사당패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남사당패의 몇 안되는 젊은 세대였던 김덕수김용배최태현이종대의 네 사람은 이러한 풍물놀이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앉은반을 체계화하고, 1978년, 최초로 《사물놀이》라는 이름으로 연주단을 창단하였다. 그리고 현대와 같이 중부지방의 가락을 엮은 웃다리 사물, 영남지방의 가락을 엮은 영남사물, 호남지방의 가락을 엮은 호남 우도, 호남 좌도 사물, 이 삼도의 가락을 모두 엮은 삼도 사물이 나오게 되었다. 마당에서 진을 짜고 어우러지는 것을 중시하는 기존 풍물놀이와 달리, 사물놀이는 한정된 공연장에서 공연되는 것을 전제로 편성되었다. 보는 것이 중심인 풍물놀이가 이닌, 듣는 것이 중심인 사물놀이로 재탄생한 것이다. 또한 기존 풍물놀이의 가락들을 정리하여 4개의 가락으로 집대성하였다.

원래 김덕수, 김용배, 최태현, 이종대 4인으로 구성된 연주단의 이름이었던 사물놀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곧 이들이 재정립한 형식의 음악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변화되었다. 게다가 원조인 《사물놀이》의 멤버들이 사망하고 독립하여 제각기 활동하면서 연주단의 이름으로서의 사물놀이는 일찌감치 퇴장하기도 했다.

1978년 사물놀이가 창단될 당시 모 민속학자가 꽹과리, 장구, 북, 징의 네 악기가 어우러지는 것을 보고 사물놀이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여 사물놀이가 탄생하게 되었다.[2] 겨우 30여 년에 불과한 역사를 가지는 사물놀이이지만, 전 세계적인 인기와 함께 오랜 전통 문화인 것처럼 알려지고 취급되고 있다. 전통이 어떻게 재창조되고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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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잡소리 

김덕수 선생이 호남사람이라 그런지, 사물에서는 장구가 크게 중요시되고 있다. 본디 호남은 장구, 영남은 쇠 또는 북이 중요시 되었는데, 때문에 두 지방의 풍물패가 만나거나 두 지방의 악공이 한 풍물패에 속한다면, 특히 두사람이 나름 명인이다 할만한 사람이라면 어느쪽이 위인지 소리로써 싸우는 명장면을 볼 수 있기도 하다.[3] 사실 8년 전까지 한 지역 안의 풍물패라 해도 둘이 맞붙으면 은근히 가락을 바꾸어들거나 엇박과 변가락을 집어넣어 소리를 어울리며 흔들며 싸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 몇년간은 오히려 연합을 해야하는 추세라 그런 진풍경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윗문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전수관에서 농악을 가르쳐주시는 사부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옛날 처음 김덕수 선생이 공연장에서 앉은반으로만 사물을 할 때, 농악하는 어른들은 모두 젊은것이 소리를 망치고 있다고 혀를찼다고 한다. 하기사, 1년을 사물을 치며 처음 풍물을 배우러 간 삐리들이 선배가 하는 이건 사물과 다르게는 말이야 하는 말에 지금 우리가 하는게 사물이 아니었냐고 묻는걸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또한 당시는 김덕수 선생이 틀을 깨는것처럼 보였을테니... 참고로 김덕수 선생이 사물을 정립했다 하더라도 모든 패가 사물을 칠 때 같은 가락만 치는것은 아니다.[4] 그래도 각 지방의 농악 풍물은 전수관이 돌아갈정도로 성하고, 전수하러 오는 이들 또한 끊이질 않고 있다. 각 패들은 자신들에 맞는 가락으로 사물을 치기에 두 패가 만나 합동공연을 하려면 맞추는데에만 꽤 연습해야 한다. 당장에 대학 전통예술연구회나 대학 풍물패만 하더라도 학교마다 달라 아직 맞붙기가 가능하다. 그러니 함부로 자신이 아는 사물가락이 아니라고 실수하고있다고 생각해버리는것은 뭣모르는 행동이니 주의해라. 이것은 비단 가락 뿐 아니라 치는 타법이나 채를 쥐는 지법, 심지어 장구의 경우는 앉는 법까지 모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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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요 가락 

  • 웃다리 사물놀이 : 경기·강원·충청 일대를 웃다리라고 하며, 이들 지역의 대표적인 가락을 집대성한 가락이다. 길군악 칠채, 짝두름 등의 가락이 있다.
  • 영남 사물놀이 : 경상도 일대의 가락을 집대성한 것이다. 삼천포 12채 길군악, 별달거리, 다드래기 등의 가락이 있다.
  • 호남 우도 사물놀이 : 전라도 지방을 동서로 구분할 때 서쪽 해안 지역을 우도라고 부르며, 이 지역의 대표적인 가락을 집대성한 가락이다. 오채질굿, 좌질굿, 풍류굿, 양산도, 세산조시 등의 가락이 있다. 호남 좌도 사물을 따로 치기도 한다.
  • 삼도 사물놀이 : 위 3대 가락을 모아서 하나의 악곡으로 편성한 것이다. 보통 호남 우도 대부분, 영남의 별달거리, 웃다리의 짝두름을 이어서 연주한다.
  • 설장고 : 4명의 장구로만 연주하는 가락
  • 비나리 : 고사 및 굿에서 부르던 고사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가락이다. 사물의 연주 가락을 반주로 꽹과리 연주자가 덕담축원이 담긴 고사소리를 구성지게 부른다.
  • 판굿 : 사물놀이의 주요 가락 중 유일한 선반 가락이다. 앉아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주요 포인트인 다른 가락과 달리 공연장이나 무대 위에서 악기를 메고 돌아다니며 진을 짜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형태의 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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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요 놀이꾼 및 놀이패 

《사물놀이》: 김덕수, 김용배, 최태현 - 징, 이종대 - 북 
《사물놀이 한울림 예술단》: 김덕수패의 사물놀이를 모태로 하여 1993년 창단 
김덕수 - 장구
위의 것은 김덕수옹의 사물놀이

윷놀이


Contents

1 개요
2 규칙
2.1 윷에 의한 이동 규칙
2.2 말의 이동 법칙
2.3 말 업기/잡기
2.4 윷을 던질때의 규칙
2.5 지역에 따른 윷 순서 변경 허용
3 윷놀이와 확률
4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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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윳(유+ㅅ)놀이가 아니라 윷(유+)놀이다. (자주 틀리는 국어 항목 참고) 이는 발음할 때도 마찬가지라 이를테면 "윷이"를 발음할 때 [유시]가 아니라 [유치]라고 발음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전자로 발음한다...

야구랑 비슷하단 설이 있다. 판이 다이아몬드형태지, 을 떠나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역경.물론 야구/기원 항목만 봐도 전세계적으로 구기종목에서 오래전부터 야구랑 비슷한 종목이 많은 걸 알 수 있다. 이거 가지고 야구에 영향을 주었네 이딴 건 헛소리이다.

대한민국의 명절용 전통 놀이 중 하나. 기원은 고려설과 신라설, 부여설, 더 위로 거쳐 올라가면 고조선설도 있다. 일본에서 8세기경 편찬된 만엽집에서도 윷놀이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나오는 걸로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은 확실. 한민족과 함께 이어져온 오래된 전통놀이임에는 확실하다. 모 아니면 도라는 관용어가 널리 퍼질 정도로 사랑받는 놀이다.

하기 위해서는 종이에 그린 말판(코스가 둥근 것과 네모난 것이 있다)과 한쪽만 평평하게 깎은 납작하고 둥근 나무 막대기(윷) 4개가 필요하다. 필요한 플레이어 숫자는 이론상으로는 2~∞ 명이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혼란스럽기 때문에 개인전이라면 대략 6명 정도가 가장 적절하다. 보통 여러명이 팀을 갈라서 하곤 한다.

먼저 한 귀퉁이에 말들을 놓는다. 그리고 윷을 던져서 규칙대로 말을 움직인다. 말을 움직여 가장 먼저 시작지점으로 돌아오면 승리한다.

건전한 놀이로 인식되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윷놀이도 도박을 했고, 특히 각 지역별로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이걸 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예전 탑골 공원 구석이나 지금은 사라진 대전의 동방마트 앞 공원도 휴일이면 여기에서 윷놀이를 하는 어르신들을 볼 수 있었다. 걸려있는 돈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업기,잡기,윷,모등으로 한번 더 던지기,빽도 등으로 낮은확률이지만 일발역전이 가능하고 실제로도 심심치않게 나오는지라 극적인 재미가 있다.

고스톱과 마찬가지로 명절 때 오래 하다보면 여유가 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말 두번정도 잡히고 나면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특히 최고의 관광보내기라 할 수 있는 4말 업어 승리가 시전되면...

1박 2일등 각종 예능 프로에서는 예전부터 각 칸마다 특정한 미션 혹은 규칙-예를 들면 출발로 되돌아가기 등등-을 정해놓고, 미션에 성공하면 한번 더 던질 기회를 주는 변형룰로 다이내믹한 윷놀이를 하기도 했다.

서양에는 이것과 비슷한 루도라는 게임이 있는데, 말이라든가 이동 규칙 등은 상당히 다르다.

중국에서 자국의 무형문화재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조선족 때문에 다 중국문화되게 생겼다 이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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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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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윷에 의한 이동 규칙 

총 4개의 윷을 손에 쥐고 집어던져서 바닥에 떨어졌을 때 윷의 방향에 따라서 이동하는 수치가 달라진다.
임의적으로 평평한 면을 '앞면'이라고 부른다. 도, 개, 걸, 윷, 모의 명칭은 동물에서 따온것인데 도는 돼지, 개는 , 걸은 , 윷은 , 모는  이라고 한다. 마가 우가 구가 저가
 
(앞이 하나/한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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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둘/두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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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셋/세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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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넷/네 칸) 
(윷을 한번 더 던질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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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없음/다섯 칸) 
(윷을 한번 더 던질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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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도(빽도) (뒤로 한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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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에 와서 생겼으며 옛날에는 없던 규칙이었던 듯 하다. 윷 중 특정 윷에 표시가 되어있는 윷의 앞부분이 보여 '도'가 나왔을 경우 말을 한 칸 뒤로 물린다. 첫 '도' 위치에 위치한 말의 경우, 두 번 뒷도가 나오면[1] 나게 된다. 말판 위에 자신의 말이 하나도 없는데 뒷도가 나오면 낙으로 처리되며 말을 놓지 못하고 차례를 다음으로 넘긴다. ||
  • 자유걸 : 뒷도에서 파생된 룰이다. 윷의 방향이 뒷도 표시된 윷가락만 앞부분이 가려지고 나머지 3개 윷가락의 앞부분이 모두 보일 경우(즉, 윷가락이 향하는 방향이 뒷도의 정 반대일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뒤로 세 칸 물리는 게 더 이득일 경우[2] 뒷도처럼 세 칸 물릴 수 있다. 꼭 말을 뒤로 물려야만 하는 뒷도와는 달리 세 칸 앞으로 갈지 뒤로 갈지 맘대로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말판 위에 자신의 말이 없을 경우는 그런 거 없다. 무조건 처음 걸 위치에 말을 놓는다.
윷놀이에서는 최대 4개이 말이 한 판 위에 올라올 수 있는데, 어떤 말을 움직일 것인가/움직이지 않고 말판에 말을 올려놓을 것인가는 자유다. 여기에서 윷놀이의 전략성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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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말의 이동 법칙 

말은 윷을 던져 나온 수대로 칸을 움직인다. 단, 말이 코너에서 멈추게 될 경우 말은 무조건 시작지점 쪽을 향한 방향으로 꺾어서 이동해야 한다. (다만 어떤 문헌에서는 '갈림길 중 자기가 선택한다'라고 되어 있는 것도 있다)[3] 일반적으로 코너에서 코너까지는 다섯 칸의 눈금을 지나야 한다. 그러므로 처음 시작해서 모 -> 걸 -> 걸이 나온다면 단 세번만에 시작지점으로 돌아가서 운수대통이다. 코너에 걸리지 않는다면 무조건 직진해야 한다.

윷놀이를 더욱 전략적으로 만드는 요소로, 이 돌아가는 길 때문에 이 게임은 단순히 높은 윷만 나온다고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윷과 모가 네다섯번 나오면 얄짤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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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말 업기/잡기 

윷을 던져서 말을 움직였을 때 도착지점에 다른 편의 말이 있을 경우, 다른 편의 말을 잡을 수 있다. 잡힌 말은 시작지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한다. 말을 잡으면 무조건 윷을 한 번 더 던질 수 있다. 한 번 더 던질 때 윷이나 모로 한 번 던지는 것과 말을 잡아서 한 번 더 던지는 것은 중복되지 않는다. 윷이나 모로 상대편 말을 잡을 경우, 윷을 한 번 더 던질 기회는 여전히 한 번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는 한 번 더 던지는 기회가 누적되는 경우도 있다.

말을 움직였는데 그 도착지점에 같은 편의 말이 있을 경우, '업기'라는 규칙이 적용되어 두 말을 겹쳐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다. 이 경우, 업힌 말이 잡히면 겹쳐진 말이 모두 시작지점부터 시작해야 하며, 업힌 상태에서 잡혔더라도 업힌 상태로 다시 출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4개를 다 업고 나면 그야말로 운수대통이지만 4개 업힌 말이 잡히면 멘ㅋ붕ㅋ(...) 단, 업기로 둘 이상 겹쳐진 말을 잡더라도 한 번 더 던질 기회는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이론상 첫 턴에 (패 순서 바꾸기 가능하다는 조건 하에) 적어도 5모 1걸이 나오면 한방에 이긴다(...) 가장 궁극적인 승리 방법은 모 4번으로 말 4개를 업고 첫번째 갈림길로 간 뒤 걸로 중앙으로 가서 남은 모 1번으로 나는 것이다. 패 순서를 바꿀 수 없는 경우 7모 이상 나오면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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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윷을 던질때의 규칙 

보통 윷놀이는 이불이나 모포등을 깔고 하거나, 거리에서 할 경우 바닥에 백묵으로 원을 그려서 하는데, 정해진 위치를 윷이 하나라도 벗어나는 순간 낙(아웃)으로 분류되어 말을 움직이지 못하고 한 회를 쉬게 된다. 지역에 따라서 다른데, 선에 걸치기만 해도 낙으로 인정하는 경우와 선까지는 괜찮다는 것으로 나뉜다. 아니면 윷이 하나만 벗어나는 건 OK라고 치기도 한다. 윷을 던질때 괜히 너무 세게 던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더불어 윷을 굴려도 반칙인 지역도 있다. 윷의 모양상 굴리게 되면 편편한 쪽이 바닥에 걸려 멈출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가 나올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 그래서 윷을 무조건 위로 던져야 하는 룰이 있는 지역이 있다. 다만 굴릴경우 낙이 될 확률이 더 커지기 때문에 굴려도 되는 룰도 있다.

간단하게 플레이하는 경우에는 낙이란 개념 자체가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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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지역에 따른 윷 순서 변경 허용 

만약 윷이나 모가 중복되어 나오고 나서 걸 이하의 패가 나온 경우, 지역에 따라 패의 순서를 바꿔서 말을 이동할 수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윷 -> 모 -> 걸의 패가 나온 경우, 말을 이동할 때는 모 -> 걸 -> 윷 순으로 하여 순식간에 말 하나를 내보낼 수 있다. 순전히 로컬룰이기 때문에 게임 전에 허용할 지 말 지 정해두고 하는 것이 좋다. 괜히 미리 얘기 안하고 자의적으로 순서 바꿔서 말을 두다가, 패 순서 변경으로 인해 상대방의 말이 잡히는 경우 친척 간에 싸움날 수도 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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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윷놀이와 확률 

윷가락 하나의 앞면(평평한면/배면)이나 뒷면(둥그런면/등면)이 나오는 확률을 각각 1/2라고 하면, 윷가락 4개를 던졌을 때는 16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패가 나올 확률을 따져보면
  • 도: 1/4
  • 개: 3/8
  • 걸: 1/4
  • 윷: 1/16
  • 모: 1/16
이와 같다. 실제 게임 할 때도 개가 유난히 많이 나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실제로도 개가 나올 확률이 가장 높다. 이를 이용해서 좀 더 전략적인 윷놀이를 즐길 수 있겠다만...이건 다른 건 아무것도 고려 안하고 종이에 계산만 끄적거렸을 때의 얘기다. 우리가 보통 가지고 노는 윷가락은 앞면이나 뒷면이 나오는 확률이 동전 처럼 반반이 아니다. 앞면이 평평하고, 뒷면은 둥그렇게 깍기 때문이다. 한쪽은 평면이고 한쪽은 곡면, 거기에 애매한 반원모양이라 무게 중심 또한 고려해야한다.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허명회 교수는 한 논문에서 ‘윷이 바닥에 닿은 순간 어느 면이 나올지 정해지고 더 이상 구르거나 튀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애매한 윷가락 반원의 무게중심을 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반원의 회전운동을 계산, (위로 나올 확률)앞면:뒷면=6:4 정도의 값을 얻은 뒤 '걸-개-윷-도-모'순으로 확률이 작아진다고 계산했다.

또한 윷가락의 모양 외에도, 바닥의 상태(담요, 맨바닥, 이불 등등), 던지는 방법도 고려대상이다. 사실 상대가 사기윷을 던지면 확률이고 머고 답이 없다.

태껸

택견의 마지막 전승자 송덕기 옹(왼쪽)과 최초의 제자인 박철희 사범(오른쪽)
1 개요 
태껸(혹은 택견)은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민속놀이이자 전통 무술이다. 본디 서울, 경기 인근에서 큰 체계가 없이 전승되어 내려오다가 초대 예능 보유자 현암 송덕기와 신한승에 의해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해 이후의 제자들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현재는 몇개의 분파로 나뉘어진 상태.

2011년 11월 28일 제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택견이 무예로는 전 세계 최초로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중국의 쿵후도 후보에 올랐지만, 지나치게 상업화 되었다는 이유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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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원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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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어원 

태껸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 서울(한양) 지방의 전통 놀이 겸 무술이다. 태껸의 어원은 탁견(托肩)이다. 그러나 이 말의 어원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약화되면서 태껸으로 굳어져 표준어 규정 제5항에 근거하여 태껸을 표준어로 삼았다. 또한 기존 남북한의 대형 사전들도 모두 태껸으로 표기했었는데 2011년 8월 31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에서 주관하는 국어심의회에서 택견도 표준어로 인정되었다.

대한택견연맹의 이용복 회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탁견이 서울지역 사투리의 영향을 받아 택견으로 변형되어 발음되는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학교'를 '핵교' 라는 식으로 'ㅏ'를 'ㅐ'로 변형시켜 발음하는 서울지역 사투리의 특징과 택견이 서울지역에서만 발견된다는 특성을 볼 때 상당히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 이르기를 '덕견이' 라고 했는데 이 덕견이가 구한말의 태껸이었는지는 알수 없다. 이 덕견이라는 어휘를 바탕으로 고구려 드립을 운운하는 곳이 있는데 신채호 선생의 글 자체가 아무 근거도 없이 조선의 수박이 일본으로 가서 유도가 되고 중국으로 가서 권법이 되었다는 식의 과대해석을 포함하기 때문에 고구려 시대에도 태껸이 있었고 그것을 덕견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지나친 추측이다.

이 항목에서는 되도록 기예로서의 모습은 사전적 어휘인 '태껸'을 협회를 나타내는 명사에는 택견으로 쓰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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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역사 

조선 정조시대(1776-1800)에 간행된 재물보(才物譜)에 "수박(手搏)은 변(卞)이라고 하고 각력(角力, 힘겨루기, 씨름)은 무(武)라고 하는데 지금에는 이것을 탁견이라 한다."는 말이 등장하고, 19세기 민속화에 씨름 옆에서 태견 하는 모습이 그려지거나, 20세기 초 탁견희라는 한시 등등에서 여러모로 언급이 되고 있다. 고로 현존하는 자료 상 태껸의 존재가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시기는 18세기 말이다. 역사가 최소 2백년은 넘으니, 고대 무술인지는 불확실하나 최소 조선 말에 존재하던 전통 무술임은 확실하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수박은 그 용례가 상당히 오래되었으며 격투기나 무술, 권술을 가리키는 옛날식 표현에 가까워보이고, 잡아 넘기는 기술은 잘 알다시피 씨름이고, 태껸은 탁견희에서 백기신통비각술이라고 서술하고 있지만 사료의 부족으로 조선시대 때의 수박과 태껸이 얼마나 공통점이 있는가, 혹은 차이점이 있는가에 대해선 아직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재물보의 언급으로 볼때 조선말 서울에서 맨손 무술을 통틀어 태껸으로 불렀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으나, 평안도의 날파람, 경상도의 까기[1] 등 다른 명칭으로 불리던 격기 내지는 놀이가 다른 지방에도 있었으나 태껸이란 용어는 다른 지방에서 채집된 예가 전혀 없는 것을 보면 태껸은 한양 지방 고유의 명칭으로 보는 것이 더 신빙성 있을 것이다. 웃대 아랫대 태껸도 전부 서울 내에서 위아래 나눈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근래 충주가 태껸의 고장으로 유명해지고 있으나, 신한승 선생 계열의 태껸 전수관이 충주에 생기면서 자리잡은 것일 뿐 충주에 태껸이 원래부터 있던 것은 아니다. 충주에서는 충주가 태껸의 본고장이라고 말하는데 태껸의 본고장은 한양(서울)이다.

현대의 우리가 태껸에 대해 말할수 있는 것은 최후의 택견꾼인 송덕기 옹으로부터 기인한, 구한말에서 오늘날로 이어지는 근대 태껸 뿐이다. 송덕기 옹의 언급과 기술의 형태로 볼때 태껸은 서울의 민속무술 겸 한량들[2]의 겨루기이기도 한듯. 타 지방의 날파람 같은 형태가 태껸을 달리 부른 이름인지, 아니면 유사해보이지만 다른 종류의 무술인지는 사료 부족으로 알 수 없다. 현대 태껸을 보고 옛 태껸이 "전쟁시 살상능력을 갖추게 하기위해 돌팔매질을 장려했듯, 신체 격투기술을 갖추게 하기위해 나라에서 장려했다…" 운운 하는 것은 조선시대 옛 태껸 혹은 수박의 관계, 옛 사료에서 등장하는 탁견과 송덕기 옹을 통해 전수된 현대 태껸의 상호관계가 학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상 장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일제에 의해 태껸판이 금지당한 경력이 있는데, 뭐 태껸을 조선 침략의 걸림돌로 보고 금지시켰다든지 한민족의 전통무술과 그 혼을 말살시키려 했다는 거창한 이유라기보단 단지 (일제의 허락을 받지 않은) 집회를 막으려는 이유였을 가능성이 크다. 딱히 무술 아니라도 일제 보기에 못마땅한, 독립 시위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집회라면 전부 훼방을 놨으니까. 한글을 금지시키는 등의 민족성 탄압정책도 있었으니 태껸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나 어쨌든 택견꾼들이 이리저리 내쫓기면서도 어떻게 끊이지 않고 전수되었고 마지막 택견꾼 현암 송덕기 옹에 이르러 현대인에게도 태껸이 전수되게 되었다.

일제에 의한 태껸 말살을 허구로 보는 설도 있다.

민족 무예라 하여 일제의 전통 문화 말살 정책에 의한 탄압으로 비밀리에 전수되어 왔노라 하는 것은 더욱 유치한 과장에 불과하다. 무슨 대단한 민족 무예라고 일제가 두려워해서 단속했겠는가. 그저 도시의 시장 경제가 발달되면서 차츰 새로운 조직적인 주먹패(깡패)들이 생겨나 동네주먹(탁견꾼, 어깨)이 꼬리를 감추면서 함께 사라진 것일 뿐이다. #

다만 위 글은 택견은 물론이거니와 무예도보통지 복원에 대해서도 거의 사파 취급을 받는 협회의 글이며 의견일 뿐이다.[3] 저들은 과거에 택견을 비천한 놀이라고 폄하해 모 협회의 회장이 직접 반박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일단 택견계에서는 택견이 비밀리에 전수되었다는 소리도 하지 않는데 저딴 소리를 하는 건 헛소리에 불과하다.

최근 허모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일제 시대에도 택견은 존재하긴 존재했던 듯 싶다. 이 조사에 따르면 권충일이라는 새로운 택견꾼의 존재가 드러난다. 무도대회에서 인기 선수로 뽑혔다는 기사도 나오는데 이런 것을 볼 때 당시 일제를 통해 들어온 검도, 유도 등의 일본 무도가 소위 제도권 무도가 되고 여러 서구 체조나 스포츠, 권투 등도 들어오면서 택견은 점점 마이너한 경향이 되어 택견꾼들 조차도 택견을 버리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다 인간문화재 선정 과정에서 태껸이 둘로 갈리기 시작했다. 문화재관리청에서 송덕기 옹의 태껸이 기술이 단조롭고 타 무술과 같은 품세가 없어 무형문화재로 등록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표하자[4], 태껸의 전파에 힘을 쏟았던 신한승 선생은 활개짓과 후려차기 같은 몇가지 기술을 집어넣고 본때뵈기, 동과 째[5]에 따른 체계적인 수련 체계를 만들어 무형문화재와 인간문화재 선정에 성공한다. 그러나 신한승 선생의 태껸 스승 중 한 명인 송덕기 옹이 인간문화재가 아닌 상태에서, 그 제자만이 인간문화재가 되는 것이 해당 법령에 맞지 많아, 송덕기 옹의 태껸을 우대태껸이라하고 신한승 선생의 태껸을 아래대 태껸이라고 구분하여 두 사람 다 인간문화재로 등록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태껸을 두 가지로 구분한 건 나중에 태껸의 분열을 불러온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두 사람이 귀천한 이후 전승자들의 입지확장 과정에서 큰 갈등이 발생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 90년대 초부터 대한택견연맹, 결련택견협회, 충주의 택견협회 이렇게 세 분파로 나뉘어졌다. 대한택견협회와 결련택견협회는 송덕기 옹의 태껸을[6], 충주의 택견협회는 신한승 선생의 태껸을 표방한다. 신한승 선생이 전국을 떠돌면서 태껸꾼을 찾아다니며 연구해 송덕기 옹과 스타일이 다르다고 하나 그의 제자였던 적이 있다는 걸 보자면, 엄밀히 따지자면 현대의 태껸은 다 송덕기 옹의 태껸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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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징 

태껸의 가장 큰 특징은 동양 무예 중 놀이화로의 전환이 제일 빨랐다는 점이다. 동양의 무예들이 가전, 문파화되어 전해지며 비밀전승 위주로 이루어지던 것에 비해서 비교적 평화롭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유지된 조선에서는 맨손무예가 문파나 가전화로 전해지지 않고 놀이의 형태로 전해졌으며 태껸도 이 맥을 같이 한다.

제일 처음 유희화된 것은 태껸이 아니라 수박인데 조선 초에 이미 충정도와 전라도의 인접한 곳의 백성들이 명절때 서로 수박을 겨루었다는 내용이 있다. 다만 수박은 그 경기 규칙이 정확하게 전하지 않는 반면 태껸의 경기화는 꽤 정확한 규정이라는 것[8]이 생긴 현대스포츠화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는 것.

또 태껸의 기술적 특성은 발로 차서 넘어뜨리는 기술과 백기신통비각술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기묘한 발길질 들이다. 발로 차서 넘어뜨린다는 것은 즉 태권도처럼 only 타격발질이 아닌, 발로 차서 상대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타격발길질과 밀어차는 발질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 또한 최영년의 해동죽지에 나오는 탁견희라는 싯구에 의하면 잘하는 사람은 비각술로 상대의 상투를 차 의기양양하다고 하는데 이를 볼 때 상투를 차버릴 정도로 기묘한 발길질도 특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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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태껸의 실전성 

택견이 실전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경우는 세가지이다. 첫째로는 택견 경기에서의 실전을 말하고 두번째로는 요즘 성행하는 링 위에서의 실전, 그리고 마지막은 흔히 말하는 싸움에서 실전을 말할 수 있다. 일단 여기를 참조. 글쓴이는 결련택견을 수년 수련한 택견인이다. 실전과 택견[9]

아래는 택견과 킥복싱의 매치 다만 이것은 택견 규칙에 따른 택견배틀에서 열린 경기이므로 무차별 격투기로 택견과 킥복싱이 싸운 것은 아니다. 즉 택견에게 유리한 것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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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택견 경기 

택견은 기록으로 보나 남은 기술들로 보나 과격하기 그지 없는 원시 격투 기술들이지만 재물보에 나온 이후로 조선말과 구한말, 그리고 대한민국 근, 현대를 거치면서 규칙이 고정된 경기로 많은 변화를 거쳤고 현대 사회에서는 주로 택견 경기가 많이 열리기에 실전 하면 많은 부분에서 이 부분을 먼저 이야기한다.

전수관에서 연습하는 기술들의 거의 대부분은 바로 이런 택견 경기를 염두에 두고 연습하는 것들로 딴죽, 덜미잽이, 낚시걸이나 각종 태기질 등이 이에 들어간다. 물론 이 기술들이라고 링 위나 싸움에서 안 쓰이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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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위에서도 설명되었듯이 링위에서의 실전이나, 싸움의 실전은 이 택견 경기 기술과 룰의 영향을 벗어나기 힘들다. 택견 경기 룰은 타 격투기에 비해서 굉장히 특이한 면모가 많은데, 미들킥 금지 룰이나, 펀치금지, 의복을 잡으면 안 되는 스탠딩 그래플링등은 거의 택견에서밖에 찾아볼수 없는 룰인 까닭에 위 기술들을 허용하는 격투기 룰에서 해당 선수와 붙을경우 상당히 곤란해진다.(위를 금지하는 서기택견과는 달리 결련택견에서는 미들킥과 주먹질 의복잡은 후 공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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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입식 타격기일 경우 

링 위의 경기도 입식타격에서의 경우와 MMA의 종합격투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입식타격의 링 위라고 가정하면 택견은 거의 힘을 발휘할 수 없으며 그런 링 위의 입식타격이 좋다면 택견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택견은 백기신통비각술이라며?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택견 항목을 참고하면 알 수 있듯이 그것은 많이 왜곡된 인식이며 역시 입식타격이라는 현대 격투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애초에 택견의 발기술들은 그런 것보다는 주로 걸거나 중심을 흐트러뜨리는 기술들이 주력이다.

일단 입식타격 격투기에서 가장 기본으로 가르치는 미들킥[10]의 존재가 없으며 복장지르기곧은발질이 있긴하지만 복장지르기는 그 자체로 템포가 반박자 느리고 곧은발질은 단련이 필요하기에 시간 대 효율의 비가 좋지 않다. 차라리 태권도의 발차기가 입식타격의 격투기에는 택견보다 백배쯤 도움된다. 딴죽이나 낚시걸이, 특히 쪼인트차기로 알려진 촛대차기는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그 기술들은 상대가 중심을 잃은 사이 다른 기술, 특히 유술로 땅에 팽개치는 것이 주 목적이며 상단 발길질로 연결하기에는 몹시 힘들다. 게다가 택견 경기가 얼굴을 한대 차면 이긴다는 규정으로 연습하기에 다른 격투기처럼 한방에 보낸다는 파워가 부족하다.[11] 물론 상대 입장에서는 엄청 짜증나기는 하지만 입식타격의 룰에서는 결정적으로 보내버릴 뭔가는 부족하다는 말.

그런가 하면, 펀치는 아예 옛법이라고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택견에서 펀치의 고수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경우 택견 이전에 타 격투기 선수였거나, 택견 외적인 방법으로 펀치를 강화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택견선수가 펀치를 하는 무술을 배우면 되지 않는가 라고 반문할수 있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택견만으론 펀치에 답이 없어서, 택견 수련을 줄이고 다른 무술 수련 시간을 늘린다는 말이 된다. 현대의 택견이 경기 위주로 흘러가면서 활개짓과 손기술은 거의 사장되고 있다. 상대의 발길질을 잡는 기술은 좋지만 상대 선수의 주먹질은 그것보다 몇배 빠르기에 적응하기 힘들며 옛법이라고 해서 무슨 비전의 팔 동작이나 손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택견의 어느 단체를 막론하고 활개짓의 비중은 매우 적다. 심지어 충주의 택견쪽도 활개짓을 서로 엉키면서 연습을 한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경기에서 휘휘 돌리는 위주로만 있고 더 심도있는 발전이 없는 형태다. 그렇기에 주먹공방이 필수이며 이에 대한 회피나 반격이 필요한 현대 입식 격투기나 MMA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약점이 있다. 만약 택견꾼이 링 위에서 택견꾼으로서 싸우고 싶다면 이런 손기술에 대한 부재를 극복할 대책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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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종합격투기일 경우 

MMA의 경우는 택견이 약간도움이 될 수 있다. 일단 권투의 처럼 택견꾼들은 딴죽이나 낚시걸이가 거의 습관처럼 나오는 데다가 촛대차기의 경우는 저돌적인 격투가들을 멈추게 하기 좋은 발길질이다. 또 유술로서의 기술과 수련들이 존재 하기 때문에 MMA의 기술 대세에 적절하다. 한편, 도복이나 의복을 잡으면 안된다는 룰이 조금 애매해 지는데, 현대 종합격투기가 대부분 웃통을 까고(...) 한다는 점에서 상관없다... 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정말로 주짓수나 유도 출신선수들이 도복을 입고나와버리면 되려 불리해진다. MMA에서 도복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상대의 쵸크 공격이나 테이크 다운 방어에 불리해지기 때문인대, 반면에 스스로의 도복을 이용한 쵸크 공격을 하기는 편해진다. 택견에는 도복을 이용한 기술이 아예 없는 관계로 되려 상대가 택견 출신 선수를 분석했다면 도복을 입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는 도복을 허용하는 MMA 단체에서만 가능한 일인데, MMA가 과거 말 그대로 반칙도 제한도 없는 룰에서 체급제, 반칙 등 규칙이 세세해지면서 도복을 입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으니 상관없을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UFC는 도복이나 긴바지의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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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타 무술가와의 대결 

그외의 다른 규칙을 가진 격투기 대회에 나가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으나 이미 그 규칙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쪽과 붙으면 99% 완패다. 태권도나 택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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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보완 방법 

영춘권의 경우는 생각보다 호환성이 좋다. 일단 영춘권의 기술 거리는 택견과 같으며 치사오를 하거나 실전 시범을 보면 딴죽이나 촛대차기 등과 연결하면서도 손기술에 대한 안법, 반격법등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다. 복싱의 경우는 손기술의 제왕에 가깝지만 반면 발기술을 원천적으로 쓰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이것으로 택견꾼답게 만드는 기술 보완은 좀 부족하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런 보완이라는 것이 결국은 택견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할 수도 있기에 대부분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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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결론 

결론은 택견으로 다른 어떤 격투기 경기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현대에서는 어불성설에 가깝다. 이미 입식타격, MMA, 기타 격투기 단체들 모두 각자의 영역을 거의 확고하게 구축하고 그에 따른 모범답안과 수련이 존재한다. 이를 어거지로 뚫고 들어간다면 이미 택견꾼은 택견의 특성을 거의 버리게 되는데 이렇게 승리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대한택견연맹의 홍모 선수가 타 격투기 경기에 나가 우승도 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인터뷰에서도 택견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요소가 존재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택견은 그저 택견일 뿐, 여타 입식격투기나 MMA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고 전혀 다른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택견협회들도 이런 면에 더 치중하고 있기에 다른 무술들처럼 입식이나 MMA에 선수들을 출전시키지는 않는다. 대한택견연맹은 룰 자체를 세분화함으로 택견만의 전문영역을 만들고 있고 결련택견협회는 택견배틀이라는 자체 경기에 오히려 다른 무술가들을 불러들이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렇게 택견 자체를 권위있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다른 무술판에 내보내 정ㅋ벅ㅋ 하는 것보다 훨씬 장기적으로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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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싸움 

실전에서의 태껸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통문화로서의 가치는 있어도 싸움이라는 실전으로서의 실용성은 떨어진다는 편견과 옛법으로 단숨에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살인무술이라는 의견이 바로 그것.

일단 첫 번째 의견이 소위 말하는 '이크에크' 드립이다. 태껸이 본격적으로 공중파를 타며 대중에게 소개되었던 1990년대 당시, 태껸에 생소하던 사람들이 현대 격투기들에 비해 너무도 이질적인 태껸의 모습을 보고 품게 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태껸을 '격투기가 아닌 놀이'로 보는 시각과 일맥상통한데, 실은 태껸 역시 나름대로의 수련체계와 트레이닝 방식이 존재하며 이는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다.

두 번째 의견은 많은 전통무술들이 거쳐간 과정으로 비단 태껸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실전 전통무술들은 대부분 급소를 공격하는 테크닉을 그 기술체계에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위험한 기술들은 대련이나 스파링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대련에서 자신의 100%의 힘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스파링의 효용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것이 19~20 세기 일본의 전통무예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딜레마다. 약속대련을 통해 살상기술을 연마해봤자 그 대부분은 전력을 다해 안전한 기술로 스파링을 해 온 스포츠 격투기 선수들을 당해낼 수 없었던 것. 권도회의 나카무라 히데오 총사와 그 수제자인 구라모토 나리하루 사범이 극진 공수도의 챔피언인 로야마 하츠오나 나카무라 마코토를 실전에서 눕혀버린 몇가지 예외적인 달인의 사례들이 존재하지만 이것을 보편화시킬 수는 없다.

현대 사회에서 눈이나 낭심 같은 급소에 대한 가격은 절대 금지하는 것이 옳고 현대를 사는 사회인들은 대부분 그런 급소 공격에 대한 것에 심리적인 브레이크가 걸리기 때문에 별로 효용이 없다. 다만 택견의 옛법은 드잡이질을 하던 한량들의 손쉬운 기술들이 많기 때문에 시시비비에서 유용하게 쓰일 기술들이 있긴 하지만 역시 싸움을 잘 하고 싶어서 택견을 한다는 것은 좀 아귀가 맞지 않는 말이다.그냥 택견이나 재미있게 열심히 하시오

택견과 실전에 대한 한가지 예로 2002년에 방영된 인간극장 '고수를 찾아서' 편에 나온 결련택견협회의 모 선생은 방송에 나가자 한 여성이 몇년 전 지하철에서 무뢰한에게 희롱당하는 자신을 구해준 그 모 선생에게 감사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자신을 희롱하는 무뢰배에게 그 모 선생이 다가와 처음에는 말로 타일렀으나 왜소한 체격의 모 선생을 우습게 본 무뢰배가 주먹을 휘둘렀으나 모 선생은 그 무뢰배를 순식간에 때려눕혀버리고 다음 정거장에서 후다닥 내렸다는 것. 경황이 없어 그 때 인사를 못 드렸다면서 게시판에 감사의 인사를 남기는 훈훈한 일이 있었다. 택견도 오래 내려온 정종 정통 전통무술이기 때문에 체력, 순발력 등의 실전에 필요한 여러가지 요소는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 있다. 다만 오늘날 택견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재미있는 수련체계와 경기의 장을 마련해 준 좋은 전통무예이며 스포츠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싸움이나 실전 같은 삭막함보다 이런 것을 더 추구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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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예인가 놀이인가? 

택견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택견이 서울지역의 놀이였을 뿐 무예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야후의 어떤 블로그에서는 택견은 살기가 없어서 무예가 될 수 없다고 하는(...) 심히 양판소스러운 황당한 소리까지 나오는 판이어서 택견꾼들의 어이가 상실되게 하는 것에 일조하고 있다.직접 촛대를 한대 맞아보면 그런 소리는 쑥 들어갈텐데 결련택견협회의 도기현 회장은 이런 말들에 대해서 놀이니까 오히려 강한거라는 말을 자신의 칼럼에서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 머리 속에서만 놀며 투로하는 것보다 규칙을 만들어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훨씬 실전적이라는 것.

사실 놀이란 스포츠라고 해야 하며 그런 스포츠 격투기들이 약하냐 하면 그건 그야말로 견공소리다. 여타 격투기의 선수들 역시 한국말로 표현하면 격투기 놀이꾼인데 놀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들의 일격을 받아내거나 피할수나 있을지 의심스럽다.

간혹 무술의 스포츠화에 부정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무술의 스포츠화로 잃는 것도 분명 있지만(급소공격 등) 오히려 얻는 것이 더 많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고류유술과 유도를 생각하면 된다. 고류유술에 아무리 살인기가 많고 유도는 치명적인 살수는 배제하고 스포츠화 시킨 무술이라지만, 자유대련이 없는 고류유술보단 자유대련으로 서로 안전하게 기량을 올릴 수 있는 유도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유도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강하다, 혹은 실전성이 있다고 평가받는 무술이나 격투기는 거의 대다수가 스포츠화를 통해 확립되었다. 그리고 택견은 이미 조선 말에 고도로 스포츠화된 무술이다.

좀 고급스러운 딴죽이라면 택견은 서울지역에서 하던 일종의 경기 규칙이며 그걸 지키면 누구나 들어와서 한판 벌일 수 있는 것이었기에 택견을 특정한 무술이며 기예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며 따라서 전통무예라는 이름은 맞지 않는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택견은 엄연히 수련체계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왕십리 지역의 까기 나 제주도 지역의 발찰락 등은 이런 수련체계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송덕기 옹에게서 전수되어 온 택견은 기본적인 품밟기로 보법을 익히고 활개짓을 익힌 후 발질에서 태질에 이르기까지 수련체계가 체계적으로 잡혀져 있었다. 한국에도 여러 전통 놀이들이 있지만 놀이들은 이런 수련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석전(石戰)이나 자치기, 승경도 놀이나 차전놀이에 수련체계가 있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

하지만 택견은 이렇게 버젓이 수련체계가 존재했으므로 전통놀이라는 이름으로 택견을 폄하할 이유는 하나도 없으며 이 택견의 기예로 싸움도 했고 또 군영에서도 했다는 증언들을 볼 때 택견은 무예라고 볼 타당성이 훨씬 높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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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무형문화재 문제 

택견은 현재 국가가 지정한 중요 무형문화재 76호이며 기능보유자는 정경화 씨다. 그리고 정경화씨를 주축으로 한 충주의 택견하는 사람들과 대한택견연맹은 견원지간을 넘어서서 상대를 비방하고 있다.[13]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큰 문제는 문화재로 지정된 택견에 대한 견해 차이이다. 정경화씨와 그 추종세력들은 국가가 지정했으니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택견을 상업화하고 변질시키는 유사단체들이 문제라고 강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대한택견연맹 측은 무형문화재는 사멸할 위기의 유산을 국가가 지정하는 것인데 이미 택견은 사멸할 위기는 지났으며 더군다나 신한승옹이 정리한 택견은 송덕기옹의 택견과 판이하게 틀리다는 이유로 무형문화재를 다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정경화씨는 한때 자신들을 제외한 택견하는 사람들은 다 사이비라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이렇게 되면 송덕기 옹에게 직접 사사한 결련택견협회도 사이비라는 소리가 된다. 더군다나 정경화는 도기현씨보다 사승관계상 한단계 아래다. 더군다나 공중파 방송에 나와 택견을 태권도와 연관시켜주는 소리까지 해서 대한택견연맹이 공문을 보내 태권도와 택견은 아무 상관이 없는 별개의 무예라고 알려 제작진의 사과를 받아낸 전적까지 있다. 이것도 웃긴게 택견이 과거의 태권도라면 대체 신한승 옹은 가산까지 날려가며 뭐하러 택견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느라 힘썼단 말인가? 문화재를 훼손하면 중벌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 정경화의 주장인데 그런 발언 하는 사람이 태권도와 택견을 연관시켜 주는 것이 옳은 행동일 수 없다.

이런 것을 떠나 송덕기옹과 신한승옹의 택견을 보면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보더라도 전혀 다르게 보일 정도로 모양이 다르다. 또한 결련택견을 싸움수를 포함한 싸움택견이라고 신한승 옹이 오류를 범한 것을 아직도 그대로 정경화씨는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것 역시 대한택견연맹이 문화재청에 공문을 보내 신한승옹의 오류가 확실하다는 답변도 받았다.

분명히 송덕기옹은 신한승옹이 제대로 택견을 하지도 못하고 본인에게 배우지도 않으면서 여기저기 자료수집한다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 부산 구덕 체육관에서 1회 택견대회가 끝난 후 신한승옹이 택견에는 활개짓이 중요하다면서 이야기하자 송덕기옹은 그야말로 역정을 내며 택견은 품밟기만 잘하면 돼!! 왜 없는 걸 자꾸 만들어서 택견을 이상하게 만들어!!! 하며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어서 회식자리 분위기가 급냉한 적도 있을 정도다.

이런 판에 정경화 씨는 그 오류들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만날 주장하는 것이 국가가 지정했으니 바른 것이며 나는 기능보유자이니 나 빼고는 다 유사단체며 유사택견이라는 병크를 계속 터뜨리고 있어서 적만 만들고 있다. 이번에 세계무형유산에 지정되고 라디오 인터뷰를 할 때도 전국에 택견을 전하는 사람이 단 50명(...)이라는 소리를 해대는 등[14] 계속 인망만 깎아먹고 있다. 저러다 정말 국가가 나서서 신한승옹의 택견은 송덕기옹의 전통 택견과 다르니 새롭게 무형문화재를 지정하면 그때가서도 국가가 지정했으니 하면서 자리를 양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택견은 무형문화재를 지정하던 당시에도 편법을 써서 두명의 기능보유자를 낳았고 지금 남아있는 영상과 자료를 보아도 송덕기옹의 택견과 신한승옹의 택견은 전혀 달랐다는 점, 그리고 송덕기옹이 신한승옹의 택견을 굉장히 싫어했다는 점을 볼 때 분명 지금의 중요무형문화재 76호는 새롭게 지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고쳐지지 않는 것은 공무원들의 일하기 싫어하는 속성과 정치관계, 그리고 무술을 보는 눈이 없는 것 등등의 문제가 맞물려서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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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원형논쟁 

무형문화재 문제와 맞물려 택견의 원형논쟁도 오랜 떡밥이다. 택견의 원형이라고 한다면 현재로서는 송덕기옹 단 한명이라고 보아야 한다. 신한승 선생이 전국을 돌며 택견을 연구했다고 하지만 택견꾼들은 대부분 서울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택견의 기예를 거의 잊었으며 송덕기옹 단 한명만이 택견의 기예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택견의 원형은 송덕기옹의 택견이 원형이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모습은 신한승옹의 수련체계로 정리된 택견이지만 신한승옹은 실제로 택견을 매우 못했고[15] 송덕기옹이 신한승옹이 정리한 모습을 마음에 매우 들어하지 않았던 것은 서울택견계승회 제자들의 증언이나 대한택견연맹의 이용복 회장의 녹취록에도 드러난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듯이 전통이란 그 시대에 발맞추어 숨쉬고 호흡하며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시대가 흐름에 따라 어떤 전통도 변하지 않을수는 없는 법이고 택견도 마찬가지이니 세 협회 모두 상생하는 길은 기능보유자인 정경화 씨를 인정하되 송덕기 옹의 택견에 더 닮은 새로운 수련체계를 만들고 더불어 원형의 보존 외에 현대적인 경기 룰 개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쪽으로 가는 것이 전통무예인 택견과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