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4일 월요일

씨름


단원 김홍도의 씨름도 일부.

대한민국에 전해지는 일종의 겨루기식 스포츠다.

[edit]

1 경기 방식 

모래판이나 매트 위에서 샅바를 허리춤에 둘러맨 두 선수가 상대편의 샅바를 잡고 다리 기술이나 허리 기술 등으로 상대를 바닥에 넘어뜨리는 경기다. 발바닥을 제외한 상대의 신체 어느부분이라도 땅에 닿으면 승부가 나기 때문에 무척이나 단순한 경기이긴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기술을 넘어 심리적인 부분 역시 크게 작용하는 운동이다.

사실 씨름 자체는 운동량도 많고 선수들이 대부분 한 덩치 하는 까닭에 일단 씨름 선수들이 싸움을 잘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리지만, 씨름은 근본 자체가 현대의 격투기-특히 타격기-로서의 특징이 적은 편이기에 일각에서는 힘싸움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테이크 다운 공방에 대해서라면 세계 제일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테이크 다운 상황에서도 유도나 레슬링은 점수를 따서 뒤집을 수 있지만, 씨름의 단순한 규칙이 씨름선수를 밸런스의 괴수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중심을 잡기 어려운 모래판에 샅바로 상대방의 손까지 들어간 상태에서 버티고 반격하는 것은 기술과 밸런스 없이는 불가능하다. 물론 그라운드 상황에서는 초짜에 가깝지만 실전이 1:1이 아닌 다대일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이점인 셈.

대한민국이 세계의 듣보잡 국가 이던 시절 우리나라 유도 선수들이 씨름을 배워서 씨름기술을 유도에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생전 처음 보는 기술이어서 꽤 효과적이었다고 한다..일본 사람들이 이점에 강한 인상을 받았지는 고전 유도소녀만화 야와라 에서도 언급이 된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씨름선수들이 이종격투기에 진출했을 때 테이크 다운을 걸거나 방어하는 기술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상대를 제압하는 타격기 부분이 안습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같은 격투기라도 승부를 내는 개념이 근본부터 다른 것은 어쩔 수 없기는 하다.
[edit]

1.1 씨름 기술 

  • 샅바 잡기 : 샅바 잡기는 샅바의 고리부분이 걸린 다리나 샅바를 잡는 팔이 상대의 팔보다 위에 있는 경우에 따라 보통 왼샅바, 오른샅바, 양샅바로 나뉜다. 체계화된 공식경기에서는 왼샅바가 정식이지만, 지역별로는 각기 다르다.
  • 다리 기술 : 다리를 이용하여 상대를 걸고 넘어지는 기술이다. 안다리 걸기, 밭다리 걸기(바깥다리 걸기), 밭다리 후리기(바깥다리 후리기), 밭다리 감아 돌리기, 오금 걸이, 호미 걸이, 낚시 걸이, 뒷발목 걸이, 뒤축걸어 밀기, 발목 걸어 틀기, 앞다리 차기, 모둠 앞무릎 차기, 무릎 대어 돌리기, 연장 걸이, 빗장 걸이, 무릎 틀기, 덧걸이 등의 여러 기술이 있다. 특히 유도의 다리 기술과 유사한 점이 많은게 특징이다.
  • 허리 기술 : 상대의 허리춤을 강하게 잡아 허리 힘으로 상대를 메치는 기술이다. 배지기, 오른 배지기, 맞배지기, 엉덩 배지기, 돌림 배지기, 들배지기, 들어 놓기, 돌려 뿌리기, 공중 던지기, 허리 꺾기, 밀어 던지기, 차 돌리기, 잡채기, 들어 잡채기, 옆채기, 업어 던지기, 어깨 넘어 던지기, 자반 뒤지기(뒤집기) 등이 있다. 특히 뒤집기는 기술씨름의 최고난도의 기술로 경량급 선수들이 이따금 보여주는 기술로 유명하다.
[edit]

2 역사 

[edit]

2.1 현대 이전 

대한민국의 전통 무술이라 할 만한것들, 그중에서도 투기 중에서는 그나마 태껸과 씨름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둘 다 무술이라기 보단 일종의 놀이, 즉 스포츠의 개념이 매우 강해서 조선 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일제시대까지 벼텨냈기 때문이다[1]. 현대에 와선 무협영화나 격투기붐 덕분에 무술이란게 1대1의 격투술인 형태로 인식하지만 과거에 무술이라 하면 전쟁들을 비롯한 다수 대 다수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무기술위주에 맨몸격투가 보조인 형태였다. 사실 태껸에는 엄연히 타 무술처럼 수련체계가 존재하는데다가 시합 때는 써서 안 될 강력한 실전기술 옛법이 있기에 놀이라고 폄훼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다만 애초에 복싱이든 레슬링이든 종합격투기건간에 현대식 격투 스포츠는 모두 일정한 '규칙'하에서 진행되는 놀이이다. 규정이라는 것은 결국 '할 수 있는것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인데 그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실전성을 어느정도 희생한 것이다. 정말로 실전이 벌어진다면, 규칙? 그런거 없다. 당장 주변에서 무기부터 집어들고 상대방의 급소부터 치고본다.

조선은 동시대의 국가들 중에서도, 비교적 안정된 정부와 세밀한 지방통제가 가능했던 국가이다[2]. 그렇기 때문에 무슨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어디 으슥한 곳에서 비기가 전해지는' 그런 일은 있을수가 없었고 씨름과 태껸도 음지에서 비밀스럽게 전해지는 형태가 아닌, 양지에서 당당하게 스포츠로 자리잡는것을 택했다. 오히려 스포츠화는 현대의 격투기가 지향하는 방향이며, 스포츠가 아닌 비밀스러운 살인술로서의 격투기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사회가 혼란하다는 증거다.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놀이 취급이었던 저들 외에도 석전이나 국궁이외에 단체로 모여서 무술을 수련하는 행위 자체가 반역죄로 취급되어 무술의 명맥이 거의 끊겼다고 한다(대표적인 예로 검계). 거기다 일제시대에도 탄압이 강했으니, 중국과는 달리 한참 전에 명맥이 끊겨 '산속에 올라갔더니 무술 고수가…!'라는 것은 한국에선 99%가 사이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 정도 진짜가 있긴 하겠지만, 그런 이들은 그들 나름의 수련을 할 뿐이었다.
[edit]

2.2 현대의 씨름 

해방 후에도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오다가 1980년대에 이만기라는 엄청난 스타가 씨름계의 제왕이 되면서[3] 국민 스포츠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당시의 인기는 오직 프로야구만이 경쟁할 수 있었을 정도. 당시 천하장사 결승전을 할 때는 길거리가 텅텅 비었다고 한다.

씨름이 프로화되기 이전인 1950~60년대에는 명절때 지역마다 씨름대회가 열리곤 했다고 한다. 당시 전국을 돌면서 소를 타가는 반직업적인 선수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창 인기가 있었을 당시는 동네씨름대회도 있었다. 특히 큰 동네에서 씨름대회가 났다하면 힘 좀 깨나 쓴다하는 사람들이 모두 출전했다. 상품으로 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기실 고려 시대의 어느 왕(까먹었다!) 때는 삼베가 상품이었고 조선시대 때는 차등을 줘서 상품을 줬다고 한다.(다만어떤 상품인지는 문헌에 없다) 무조건 소를 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상품 대신 상금을 주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란다.

이만기가 국민 천하장사가 되어 1980년대를 호령하면서 폭발했던 국민적인 인기는 훗날 강호동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이만기와 라이벌로 활약한 1990년대 초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급격히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edit]

2.3 프로씨름의 몰락 

프로씨름이 1990년대 중후반 들어 몰락한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만기 식의 키가 작고 덩치가 작은 선수들이 테크닉으로 현란하게 기술을 거는 화려한 씨름이 점점 쇠퇴하고 덩치로 승부하는 빅맨들[4]의 게임이 씨름의 주류가 되면서 재미가 없어졌다는게 중론. 자신보다 훨씬 큰 덩치를 화려한 콤보 기술로 내다꼽던 이만기, 이준희, 강호동 등의 기술씨름에서 샅바 잡고 주구장창 밀고당기기만 하다가 끝나는[5] 지루한 씨름이 대세가 되니 당연히 인기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잘생긴 외모에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미남 신사 이만기, 그리고 이만기 라이벌로서 당돌하고 건방진 악동 캐릭터로 인기 있었던 강호동의 은퇴 후에 씨름계를 이끌 대형스타를 만들지 못한 것도 씨름이 쇠퇴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제2의 강호동'으로 불린 백승일,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들소' 김경수 등이 1990년대 중후반 씨름판의 인기스타로 군림하기도 했었지만 이만기와 강호동이 호령하던 그 시절보다는 뭔가 아쉬웠다.이후 여러 유망주들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소리소문없이 묻혔다.

1990년대 내내 씨름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고, 대회스폰서가 떨어져나가고, 거기에 외환위기 크리까지 겹쳐 한두 개 씩 팀이 해체되고, 공중파 TV 중계가 크게 줄어드는 와중에 씨름연맹은 미봉책조차 내놓지 않은 채 그저 사태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최홍만이 이종격투기로 전향하여 K-1에서 성공하고 이태현, 김영현 등도 씨름판을 떠나 이종격투기로 옮긴 일은 씨름판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어떻게든 씨름 인기를 살려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이만기를 씨름연맹은 시끄럽다고 영구제명해버렸다. 이것은 씨름연맹의 가장 큰 삽질로 비견된다.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로, 이 정도까지 몰락하게 된 배경으로는 위기가 닥쳤는데 무사안일로만 일관한 채 프로씨름을 망하게 만든 한국씨름연맹이 있다. 대한빙상연맹KESPA, 한국성우협회 등 일 못한다고 욕먹는 협회야 많긴 하지만 그래도 판 자체를 부숴버릴 수준으로 일을 개판으로 하지는 않는데, 아예 리그 자체를 망하게 할 정도로 일을 전혀 하지 않은 협회는 한국 역사상 한국씨름연맹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만악의 근원이 되어 전설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인기있는 스포츠라도 스타의 부재와 무능한 협회의 이중고가 작렬하면 리그가 망한다는 대표적인 그리고 가장 처절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때는 10팀이 넘어가던 프로팀은 최홍만이 속해있던 LG투자증권이 해체되면서 사실상 막을 내렸고[6] 유일하게 남아 있던 현대중공업도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에 운영권을 넘기고 실업팀으로 전환했다. 현재는 각 지역 실업팀들 위주로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종격투기로 옮긴 전직 씨름선수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대부분 은퇴하거나 씨름계로 복귀하고 있는 상황.
[edit]

2.4 씨름계 내홍의 소용돌이 이후 

씨름의 침체기 이후로 1980년대 전성기와는 달리 이제는 천하장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늘어났다.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타고 있고 광고모델은 물론 TV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던 이만기나 강호동이나 최홍만까지는 지금도 대다수가 기억하고 있는 편이나 요즘에는 천하장사가 탄생하거나 배출해도 그가 누군지 이름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만큼 씨름의 침체기와 쇠락성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보여줬던 원인. 과연 이들의 대를 이을 유명한 천하장사는 없는가 그래도 명절에는 특집 프로로나마 지상파에서 편성을 해주니 중계조차 끊어진 다른 종목들에 비하면 민속 종목으로서 우대를 받고 있는 편이다.

한편 경기력 면에서 예전에 살덩이들이 시간만 질질끄는 지루한 경기 패턴을 버리고 최근에는 인기를 모으고자 하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선수들도 예전 같이 나이 많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근육질의 건장한 청년들로 바뀌었고,[7] 좋은건지 나쁜건진 모르겠지만, 이때문에 눈요기 삼아 씨름을 보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근육질 남자들이 트렁크만 입고 샅바만 두르고 나오니까. 시합 자체도 꽤나 빠르고 신경전이 만만치 않다. TV에서 시합을 하면 구경삼아 한두번 정도는 보길 권장. 일단 선수들 체격도 뭔가 운동선수스럽게 바뀌었고, 예전보다 기술씨름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 전략적인 측면도 보강되는 듯.


예전보다 경기가 좀 더 박진감 넘친다. 오오.

일부에서는 씨름을 일본의 스모 등과 같이 세계적인 스포츠로 육성발전하여서 한식이나 K-POP 못지않은 또 하나의 한류문화 및 스포츠로 정착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 그래서 2008년에 대한씨름협회가 주도하여 세계씨름연맹이 발족, 걸음마 단계이긴 하나 씨름의 세계화에 노력하고 있다. 참고로 몽골의 부흐 선수들이 한국와서 씨름선수로 등록하여 대회 나오기도 한다.
[edit]

3 경기 주관 단체 

씨름의 주관 단체로는 대한씨름협회와 한국씨름연맹 두 단체가 있다.

대한씨름협회는 1927년에 창립한 씨름계의 대표 조직으로 현재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이다. 주로 초/중/고/대학부 아마추어 씨름을 관리한다. 재밌는 것은 이 협회 초대 회장이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선생이시다. 몽양 선생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스포츠광이신 듯. 오오.

그리고 1983년 프로씨름이 출범하면서 탄생한 민속씨름위원회가 훗날 이름을 바꾼게 한국씨름연맹이다. 즉 대한씨름협회와는 별도로 프로씨름을 관리하는 조직이다. 대한야구협회와 KBO의 관계로 보면 된다. 이만기를 제명하는 듯 온갖 벙크를 저지른건 한국씨름연맹 쪽이다. 하지만 씨름계의 무능과 정치적인 내홍으로 프로씨름팀이 모두 해체되고 한국씨름연맹만 남게되자 이만기는 독자적인 프로씨름 조직 창설을 준비하기에 이르고 이에 씨름연맹이 발끈해서 이만기를 제명했는데 그 이후 조직은 공중분해됐고 연맹의 공금은 증발됐다(...)

결국 프로팀이 모두 해체되면서 한국씨름연맹은 대한씨름협회의 산하 조직으로 들어갔다. 이후 대한씨름협회 쪽에서 실업팀을 중심으로 부흥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한씨름협회는 일을 잘한다는건 절대 아니고
[edit]

4 세계 속의 씨름 

좀 우려되는 게 이젠 중국에서 조선족이 한다고 이것까지도 중국 스포츠라고 들먹이는 자들이 있다. 우리네 환빠와 달리 유네스코에 이걸 중국 것이라고 등록하고 해외에 소개하니 더 문제인데, 이미 내몽골을 두고 부흐(몽골 씨름)까지도 이랬다가 몽골에서도 엄청나게 반발한 바 있다.

단, 씨름을 중국 조선족의 민속으로서 소개하는 건 문제가 없다. 중국기원이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현재 중국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풍습이란 점은 분명 사실이니까. 문화와 풍습의 경계는 국경과 동일하지 않다. 때문에 압록강-두만강 너머의 중국땅에서도 씨름이 그 지역의 풍습이 된 것이고, 중국과 상당히 떨어진 한국 강원도에서 '단오제'의 풍습이 내려오는 것. 단오제가 단오절의 한국 현지화이듯, 중국조선족의 씨름 역시 우리문화의 중국 현지화 사례이다. 사실 'XX이 우리 것을 자기들 것이라 우긴다'는 주장엔 사실 확인을 하지않은 오해가 많다. 물론 그 주범은 각국의 언론. 역시 기레기는 까야 제맛

그리고 최홍만이 일본가서 활동면서 일본 연예인들이 씨름을 한국 스모라고 이야기하는 동영상들이 알려진 적도 있다. 사실 많은 경우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비슷한 운동으로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건 흔한 예이다. 영어권의 경우 씨름이나 부흐, 스모의 경우 처음엔 그냥 앞에 나라이름을 붙여서 XXX레슬링 정도로 표현하기도 하고[8]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엔 스모를 설명할 땐 일본 씨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요즘엔 스모가 인지도가 높아 일본 씨름이라고 잘 안하지만, 같은 예로 몽골 씨름 또한 부흐라는 이름이 있는데 한국에선 부흐라고 해봐야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몽골 씨름이라고 하는것도 마찬가지. 또한 모로코 옆에 위치한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에도 한국의 씨름과 거의 비슷한 루차 카나리아(la Lucha Canaria)라는 힘겨루기 경기가 존재하나, 영어로 로컬라이징하면서 Canarian Wrestling이 돼버렸다. 다만 우습게도 한국 측은 씨름이란 말을 영어로 코리아 레슬링이라고 병크같은 표기를 하다가 욕 처먹고 취소한 적까지 있다! 현재는 주로 SsiRum으로 표기한다.
[edit]

5 생활체육으로서의 씨름 

최상위급 대회는 조직이 무너지고 흥행도 무너져서 예전보다 인기가 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는 상관 없이 각 학교나 각종 단체의 체육대회 종목으로 꼭 껴 있다. 방송 등에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스포츠 아이템. 예전에는 남성만의 전유물로 인식되지만 현대 들어서는 여성들도 씨름을 직접 즐기는 사람도 꽤 있다. 아예 여성 씨름대회가 생활체육으로 활성화 돼 있기도 하다.

다른 격투종목과는 달리 폭력성이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어 TV 프로그램에서 대항전 아이템으로 쓰기 좋다. 정규 예능에서도 한 꼭지를 담당하기도 하며, 특히 명절 특선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 씨름대회가 거의 100% 편성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자신의 괴력을 부인하려는 모 소녀장사의 주종목이기도 하다. 응?### 그러니까 아육대에서 씨름 종목 도입이 시급합니다.

씨름의 규칙을 역으로 이용한 씨름도 있다. 자신의 신체가 먼저 땅에 닿아야 하고 상대는 필사적으로 이를 막기 위해 힘을 쓰는 모습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이것도 제대로 하면 나름 긴장감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9]

이만기가 한국씨름연맹의 공중분해 사태 후 "그래도 씨름은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있다. 한동안은 어렵겠지만 다시 씨름이 인기를 얻을 날이 올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즐기는 의미의 씨름, 생활체육으로서의 씨름의 위치는 지금도 확고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