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원 ¶
설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대체로 세가지의 설(說)이 있는데, 새로 온 날이 낯설다라는 의미에서 낯설다의 어근인 "설다"에서 온것으로 본 시각과 "선날", 즉 한해가 새롭게 개시되는 날을 부르던 말인 것이 선날이 설날로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 그리고 자중하고 근신한다는 의미의 옛말인 "섦다"에서 왔다고 보는 시각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딱히 어느 것이 옳고 틀리다기 보단 저런 의미들이 다 포함되었다고 보는 편이 일반적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설날에 눈이 내리면 장난 삼아서화이트 설'雪날'이라고 부르기도...
또한 설이브 전날을 '까치설'이라고도 하는데,[1] 사실 이 말은 작은 설을 뜻하는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 변한 말이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설날에 눈이 내리면 장난 삼아서
또한 설
3 역사 ¶
설날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역법체계가 갖춰져야만 지낼 수 있는 명절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지내던 명절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부여가 자체적인 역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을 볼때 이미 부여시절부터 설날의 풍습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에서 사용 중인 태음력은 시헌력으로, 역법 전체의 기준이 되는 달은 동지가 든 달, 즉 子月을 음력 11월로 간주한다. 정월, 즉 음력 1월은 寅月이다.
구체적인 설날의 풍습에 대한 기록은 신라시대에 전해지는데 수서에 의하면 신라인들은 원일, 즉 새해 첫날에 서로 문안을 드리고 왕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군신들을 격려하며 일월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백제 고이왕이 정월에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냈고, 책계왕 때 시조 동명왕에게 정월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설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전통도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중요명절로 설날은 빠지지 않았는데 이는 설날이 이미 오래전부터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전통적으로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쭉 이어지는 축제 기간으로, 이 기간 중에는 빚독촉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러나 1894년 갑오개혁 및 1895년 을미개혁이 시행되면서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1910년 일제시대 때 조선총독부가 훈령을 통해서 앞으로는 조선인들도 일본인들처럼 양력 1월 1일인 신정(新正) 때 의무적으로 명절을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또한 음력설을 구정(舊正)으로 격하하여 음력설에 명절을 보낸다거나 세배를 가게 될 경우 즉시 엄벌에 처한다거나 해당자들의 생활적 제재 등을 가할 것이라는 공포(公布)를 내리기도 했다. 또 각 지방 떡방앗간 등에도 음력설에 떡을 치거나 돌릴 경우 그 업소에 대해서는 처벌도 가할 것이라는 훈령도 내렸다. 실제로 일제는 음력설에 세배를 가거나 귀성을 하는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순사들을 통해서 감시 및 통제를 통한 단속에 나섰으며 일부에서는 오징어 먹물이나 검은 물로 된 물총을 발사하여 음력설을 쇠려는 조선인들의 명절 귀성이나 세배길을 방해하기도 했다. 특히 소복(素服)을 입은 조선인들은 가장 먼저 표적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일제의 처벌 및 제재 등에 대한 두려움과 눈치 때문에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인들처럼 양력설(신정) 때 명절을 보내는 성향과 그래도 1000년동안 내려온 전통풍습을 지키고 조상에 대한 무례 등을 우려하여 그대로 음력설을 보내는 성향이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음력설을 없애기 위한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끝내 음력설을 없애지는 못하였으며 민족의 양심을 가진 조선인들의 노력과 사수 등으로 인하여 음력설은 그렇게 유지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는 신정만 연휴였고 구정은 아예 공휴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이승만, 장면 정권 때는 대부분 재량에 따라 설날에는 휴무하였기 때문에 '이중 과세(過歲)'가 가능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그마저도 못 하게 아예 탄압을 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때 '민속의 날'이라 하여 설날을 공휴일로 공식 지정함으로써 이중 과세가 부활했고[2], 노태우 정권 때는 민속의 날을 '설날'이라고 이름을 바꾼 뒤 하루만 쉬던걸 지금과 같은 3일 연휴로 만들었다. 그 대신 신정 연휴는 하루 단축되었다. 이로써 구정이 진짜 설날로 확실히 자리잡게 되었다. 게다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신정은 단 하루만 쉬게 되었다. 그 이유는 공휴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사실 IMF 외환위기의 영향도 있었다.), 일제의 잔재를 보다 확실히 청산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그럼 아예 없앴어야지
4 풍습 ¶
5 여러나라의 설 ¶
한국에서는 알다시피 해마다 민족 대이동이 벌어진다. 한국에서는 매년 헬리콥터를 이용해 공중에서 중계하며, 이 날 눈이 펑펑 와서 '雪날'이 되어 버리면 아이들은 몰라도 어른들은 미친다(…).
설날 민족 대이동은 중국에서도 매우 극심한데, 이쪽은 대륙 스케일로 민족 대이동을 해야 하고 도로체계나 철도체계도 낙후되어 있으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1953년 휴전 이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설날을 사회주의 생활양식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지않다가, 1989년에 설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이중 과세가 부활하였다. 하지만 설날이 양력설을 누르고 중요한 공휴일의 자리로 오른건 2003년 들어와서부터다. 다만 북한의 경우 음력 1월 1일에서 3일까지 쉰다.
일본은 양력만 따지고 음력은 버린다.
몽골에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세뱃돈을 건네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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